트위터에 적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트위터의 특징상, 퇴고 없이 단숨에 써내려간 글이라 글이 좀 엉성할 수도 있겠다.
얘기가 나온 김에 끄적. 반말실험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섬뜩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실험은 정말 순식간에 내 손을 떠나버렸는데, 실험가를 자처하는 모두가 열광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나는 우려가 크다. 일단, 늘 말하는 대로. 나는 언어의 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며- 대단히 위험한 도구라 보는 입장. 어찌되었건 내 이상 중 하나는 언어의 소멸이며(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안다), 내 반말 실험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물론 지금은 각자 나름의 실험을 하고 있겠지만. 내가 굳이 실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댓말을 거부한다는 것-특정 언어의 특정한 용법을 거부한다는 것의 효과. 이걸 잘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실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말실험. 나는 "실험"이라는 단어의 위력에 주목한다. 이 단어는 반말이란 단어와 결합되면 무척 매력적으로 들린다. 나는 반말 실험이 일정 단계에 이르러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되면 그 이후에 반말 운동/존댓말 운동으로 이름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시작한 "실험"에서 "실험 대상"은 어디까지나 "실험 참가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내면은 관찰에 한계가 있으며, 언어사용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파악할 수가 없다. 때문에 관찰대상은 나로 한정된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반말로만 대화를 하며 나의 내면과 언어사용, 그리고 나의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한 다음- 나름의 결론을 내리려 했던 것. 아나키즘 실험이라는 것에도 나름 의미를 두기는 했지만 핵심은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언어라는 위험한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고 특정 방향으로만 사용되는 공간에 한 인간(나)을 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함인데, 그 와중에 섣부르게 전파된 것이 안타깝다.
운향의 경우는 좀 독특한데, 운향은 내 실험을 접하고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굉장히 열렬하게 반말을 전파하고 있다. 아마 나는 몰라도 반말실험가 운향을 아는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개인적인 실험이 순식간에 운동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했는데, (만약 운향이 아니었다면 정말 이 실험은 개인의 영역에서 정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꽤 복잡한 심정을 갖게 되었다. 내 아이디어가 누군가에게 호응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다. 기쁨, 희망, 재미... 와 같은 감정이 지속되는가 하면. 내가 초기에 잡은 실험의 조건들이 타인에게 전달되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가는 것은 걱정스러웠다. 무섭기도 했고, 가끔은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반말이 언제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일상의 누구에게나 반말을 듣는다. 2008년에 시작한 실험이다. 2년이 흘렀다. 과장 같겠지만 일주일간 존댓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반말은 일견 '어린아이들의 언어, 친근한 이들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기에 사회의 권력을 일부 해체하는 데에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전혀 다른 모습도 있다.
반말은 권력자의 언어이기도 하다.
만나는 거의 모든 이에게 반말을 하다보면, 모두가 친구-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전혀 다른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애초에 반말과 존댓말은 스스로의 계급과 타인의 계급을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내 구체화하는 도구의 일종이었다. 과연 반말만을 사용하는 것이 괜찮은 선택일까? 내 이념에 올바른 선택일까? 나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본다. 반말실험에 찬성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본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반말 실험이 종료되면- 존댓말 운동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반말 운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언어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이고 언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모든 언어는 폭력이다."라는 급진적이고 괴상한 구호를 내놓을 수도 있다. 가령 나는 자칭 문학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두려우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결론 이상의 것을 생각한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은 입을 다물 줄 알아야 한다." 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떤 정치적인 침묵이나 외면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다른 이들의 실험이 어떤 이념을 갖고 어떤 결과를 예측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건 간에. (혹은 그저 장난으로 실험이라는 이름을 내걸었건 간에) 그 실험들은 나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 그러나 나의 실험은 확실히 진전되고 있으며 언젠간 결론을 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반말 실험이라는 용어가 전파됨에 따라 그 용어를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엉뚱하게 사용하는 이상한 실험가들에게 상처받은 분들에게는 사과를 드린다. 사과를 드립니다.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음. 그리고 질문이 들어오는데, 나는 언어의 소멸을 꿈꾸는 사람이지만 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언어를 소멸시켰는데, 소통과 지식의 전달을 위해 언어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는다는 프레임 자체가 찝찝하다. 나는 소통이 사기라고 보는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지 않은 섬이라 본다. 꾸준히 언어의 소멸을 말하지만, 내 관점에서, 사실 언어는 이미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통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내게 말을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나 역시 말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철학전공자 주제에 말주변이 없어서 더 이상 내 생각을 늘어놓는 건 힘들듯. 개똥철학이라 보아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나는 언어를 강하게 믿는 사람들이 두려우며, 언어를 일종의 패션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소름끼친다. 처음엔 반말 실험으로 존댓말 소멸 시뮬레이션, 그 다음엔 존댓말 실험으로 반말 소멸 시뮬레이션을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요원한 일인 것 같다.
ps. 좀 덧붙이자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특정한 단어가 없는 집단에서는 그 단어와 관련된 어떤 (우리에게는 당연한) 관념이 없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문학이 종교라거나 자칭 문학 소년이라거나 하는 사람들은 거부감이 든다. 진짜 문학하는 이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할 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펜을 굴린다)는 생각도 있지만, 언어를 패션으로 보는 사람들이 겁난다.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그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