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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27일
내일의 죠. 주인공의 행보가 라이벌과의 승리나 애인/친구들과의 해피엔딩으로 이르는 타 만화들과는 달리, 이 만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죠의 죽음이다. 죠라는 한 인간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가.
내일의 죠를 꼭 정독하지 않더라도, 죠를 감명 깊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만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죠에게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아로 자라나 꼬마들 무리를 이끌고 사기와 폭력을 일삼다 소년원에 들어가 권투를 배워 권투 선수가 된 인물이었으며... 사망 직전의 며칠 안되는 동양 챔피언이라는 영광을 빼고는 평생 동안 고통과 외로움에 휩싸여 살았다. 죠의 길을 가로막은 가장 커다란 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정한, 유일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리키이시를 권투로서 죽게 했다는 사실(그 정신적 충격으로 죠는 오랫동안 상대의 안면에 펀치를 날리지 못하는 퇴물 복서가 된다)이었으며, 리키이시의 죽음을 간신히 극복한 직후 찾아온 펀치 드렁크(권투 생활을 하며 머리를 너무 많이 맞아 뇌에 이상이 생기는 병적 증상)는 결국 죠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죠는 결국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한 타이틀전에서 판정패하며,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망한다. 그에게 권투를 가르친 단뻬이 영감과 평생 그를 괴롭힌 여인 요코 옆에서. 죠의 삶이 비극적이고 비참했다는 것은 죠와 비슷한 출발점을 가졌던 인물인 니시의 삶을 볼 때 더욱 잘 알 수 있다. 니시 역시 소년원 출신이며 죠와 비슷하게 권투를 시작했지만, 니시는 권투의 길이 외롭고 괴로운 길임을 깨닫고 근처 식료품점에서 건실하고 듬직하게 일하며 월급을 모아, 결국 식료품점의 딸인 아름다운 노리코와 결혼하게 되지 않는가. 니시가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노리코가 원래 죠를 사랑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논리로 결국 인생의 승리자는 니시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만화에서 보이지 않는 대비를 이루고 있는 엔딩이 바로 니시와 죠의 엔딩이다. 안정된 일터와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니시의 엔딩과, 투견처럼 싸우다 링 위에서 죽음을 맞은 죠의 죽음은, 일견 한쪽의 삶에 그 시선을 빼앗기기는 쉬우나, 물러서서 다시 한 번 곱씹어보면 인생에는 기묘한 갈림길이 있음을 시사한다. 니시와 같은 삶이 있고, 죠와 같은 삶이 있다. 마치 플라톤의 '국가'에서 플라톤이 트라시마코스의 입을 빌어 "정의는 강자의 편익이다" 라고 주장하며 '국가'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소크라테스와 대비되는 냉정한 현실을 드러냈던 것과 같이, 작가는 니시의 삶을 빌어 현실의 바람직한 엔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니시의 사회적으로, 상식적으로 바람직한 엔딩이 죠의 비극적인 마지막보다 그다지 비중 없고 어느 정도는 냉소적으로 (죠는 노리코와 니시의 결혼 소식에 대해 그다지 관심갖지 않고, 되려 미소짓는다)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긍정할 수 없다면 만화책 '내일의 죠'를 한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읽어보았다면 당신은 과연 그 만화책을 읽는 도중 죠의 삶보다 니시의 삶을 진심으로 더욱 부러워하였는가? 우리가 죠의 죽음과 삶, 나아가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도 동경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주특기인 크로스카운터는 상대방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겨우 쓸 수 있었던 것이며, 죠는 거의 언제나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힘겹게 승리한다. 수도 없이 다운 당하면서도, 얼굴이 짓뭉개지면서도, 마치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죠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우상이자 친구이다. 권투의 길이 외롭고 힘들어 세상과 타협한 니시와는 달리,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링 위에서 끝까지 비틀대며 일어나는 죠는 누가 뭐래도 인생의 승리자다. 고아출신이라는 설움도, 소년원에서의 집단 괴롭힘도, 리키이시의 강펀치도, 무관의 제왕 카를로스 리베라도, 세계 챔피언 호세 멘도사의 컴퓨터같은 테크니컬 복싱도, 헌신적인 사랑을 보낸 노리코의 사랑도, 사디스틱한 사랑을 보냈던 아름다운 요코의 때늦은 고백도, 펀치 드렁크로 인해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장애도,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 스스로의 예감도... 어느 것도 죠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죠는 자신이 호세 멘도사에게 이겼다고 생각했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쉬기 시작했을 뿐이다. 노리코 : "죠는 외롭지 않아? 죠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은 애인이랑 산이며 바다며 젊음을 즐기러 다니고 있는데 말이야. 죠는 언제나 땀이랑 바셀린, 그리고 송진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체육관에 틀어박혀서 줄넘기를 하거나 유연체조를 하거나 샌드백을 치거나... 가끔 밝은 곳에 나오지만 그것도 눈부신 조명이 비치는 링이라고 하는 우리 속... 담배 연기가 자욱한 경기장에서 술에 취한 관중들의 야유와 방석 세례를 받아가며 투견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얻어맞기만 하는 생활... 게다가 한참 성장해야 할 나이에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도 못먹고, 마시고 싶은 것도 못 마시고... 불쌍하고... 비참해. 청춘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두워!" 죠 : "표현이 좀 부족할 진 모르겠지만... 난 의무감이나 의리만으로 권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권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거야. 노리코가 말하는 청춘을 즐기는 것하곤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끓어오르는 환의 같은 건 지금까지 여러 번 느껴봤어. 피범벅이 된 링 위에서 말이야! 어정쩡하게 불완전연소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진 않아. 아주 짧은 순간일지언정 눈부실 정도로 붉게 달아오르는 거야. 그리고 그 후엔 새하얀 재만 남는 거지... 타다가 마는 일은 없어. 오로지 재만 남는 거야." 엠앤캐스트에서 퍼온 영상입니다. 아아 죠는 죽었지만 우리는 죠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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