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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04일
김용, 이태백, 협객행

김용의 소설 협객행(俠客行)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제목 '협객행'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얼핏 보면 마치 협객의 도를 논하는 듯한 정통 무협지의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협객행이라는 세 글자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목적이자, 과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 속에서 '협객행'은 이백의 시 '협객행'(춘추전국시대 신릉군의 식객이었던 후영과 주해의 고사를 노래한 시)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협객도라는 섬을 찾아가는(行) 주인공 개잡종의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데다가, 그렇게 해서 찾아간 협객도에는 이백의 협객행이라는 시의 해석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년간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전반부는 산에서 살아 세상물정을 모르는 소년 개잡종(그닥 아름답지는 못한 이름이다;)이 세상에 나와 자신과 똑같은 용모를 지닌 장락방의 방주 석파천으로 오해받으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이제 어느정도 세상물정은 알게 되었으나 여전히 순박하고 마음 착하지만 일자무식인 개잡종(...)이 협객도로 가게 되어 이태백이 남긴 시를 공교롭게도 일자무식이기 때문에 해석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소설 막바지에 등장하는 협객도의 벽에 새겨져 있는 이백의 협객행 해석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하고 합쳐지지가 않는 부분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 소설의 주제가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소통의 문제로 비롯되는 많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부모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던가(석청과 민유부부), 사랑하는 연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던가(정당),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다던가(정불사)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얽혀 돌아가는 소설 속에서 최종적으로 이백의 어려운 시를 두고 일자무식인 주인공이 한자를 보며 올챙이가 꼬물거리는 상상을 하여 풀어내는 일은 그야말로 인간 소통과 문화에 대한 재미있고도 기발한 성찰이자 비판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그뿐만 아니라 사회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주인공의 입장에서 사회의 예의와 가식이 얼마나 우습고 이치에 맞지 않는지를 따지기도 하고 있는데, 예의란 것이 본래는 소통의 한계로 인한 오해를 막기 위해 탄생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 인간의 언어와 문화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한편, 이러한 점을 두고 개인적으로 발터 벤야민의 아담의 언어에 대한 연구가 떠올랐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문제를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바벨의 언어를 두고 비유적으로 생각하여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언어인 아담의 언어를 생각했던 발터 벤야민과 김용의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공유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방향이 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게, 발터 벤야민이 철학자로서 언어와 예술의 근본적인 면을 두고 사유했다면, 김용은 인간의 문화와 예절, 오해와 화해의 메커니즘을 두고 사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협객행의 문학적으로 뛰어난 면을 매우 잘 설명해주는 홈페이지.
http://www.zuwon.com/index_3.php?page=work/hyup

김용, 협객행, 이태백
# by 환자 | 2008/05/04 14:32 | 나중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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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환상 at 2008/05/04 19:04
학교 도서관에서 사조영웅전을 보고 있는 중ㅋ 공강시간에 조금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2권 중간쯤 보고 있는 중.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04 22:21
환상 / 사조영웅전 2권이라면 곽정과 황용이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영웅 곽정의 여정을 읽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
Commented by 환상 at 2008/05/05 01:30
근래에 판타지나 무협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는데 보려니까 좀 찔린다. 그래도 일단 재밌다는건 어쩔 수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05 02:57
환상 / 마음은 이해하지만 김용 소설은 읽어서 손해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ㅋ 이건 그냥 무협지라기보다는 널리 인정받고 있는 문학작품이니까.
Commented by 시렌 at 2008/05/06 00:37
석파천이 나오는 책을 읽었지만 제목을 기억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협객행이었군요.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06 02:07
시렌 / 오 시렌님도 협객행 읽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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