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서 집안의 둘째 아들 스피드. 그의 이름과 영화 제목과의 기묘한 일치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내게 있어 묘한 비웃음의 일차적 원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듯이, 이름이란 건 정말이지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 세상에 이름이 스피드 레이서라니! 다이하드의 존 메클레인 이름이 다이 하드였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의 이름은 단지 스피드 레이서라는 이름을 가진 레이서가 스피디하게 달린다는 영화 내용을 여섯 글자로 압축한 종류의 가볍고 얄팍한 것이 아니다. 카 레이싱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집의 레이싱에 대한 의식과 열정은 분명히 무언가 먼저 있었던 성을 레이서로 바꾸었을 법한 그들의 패밀리 네임을 통해 그들의 이름이 사회적 차원에서 명명된 개인의 호칭이 아니라 이미 그 자신의 숙명이자 이상이고 종교임을 드러낸다. 레이서는 그들 가족 영혼의 이름이다. 때문에 주인공 스피드가 돈과 권력으로 그의 영혼을 팔아넘기기를 권유하는 로열튼 앞에서 그의 악마적 정체를 폭로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지켜낸 것은 승부근성도 레이서로서의 자존심도 아닌 바로 그 자신과 가족의 영혼이었다.
스피드 레이서. 이 영화는 자신의 영혼이 담긴 이름을 거대 자본과 권력으로 상징되는 세계의지에 맞서 지켜내고 하나의 작은 승리를 일궈내어 진정한 레이서의 진실은 스피드와 레이싱이라는 매우 당연하고 원색적인 사실을 말하는 영화다. 세계의지, 거대권력, 저항, 레이싱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불합리한 세계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맞서라는 주제는 아마도 감독 워쇼스키 형제의 가장 중요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고 자신의 몸보다 약간 큰 닭장에서 사육되는 한 마리 치킨과 같은 인간,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닭장에서 빠져나오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닭을 영화화한 것이 매트릭스였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돈과 권력을 통해 그 마각을 일부 드러내는 전제주의적 세계의지에 자동차 한 대로 맞서는 스피드의 레이싱을 통해 단 한 번의 값진 승리를 일궈낸다. 그렇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의 정신적 후속작이자 연계작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10대 시절 가장 싫어한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20대가 되어 가장 사랑한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사회의 원리는 돈이며 우리는 그것의 노예임을 거친 은유를 통해 설명해 주었을 때, 나는 반발했다. 적어도 나만은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한 명의 노동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자각하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즉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이라는 사실을 노가다와 알바를 통해 온 몸으로 체득하는 순간 눈물고인 눈가에 나타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쳐진 어깨였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내 사랑하는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우리는 서서히 세계의지에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또다른 아버지가 되어 자신만의 매트릭스 속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사이퍼와 같은 욕망은 사실 가장 대중적인 것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세계의 의지나 헤게모니 같은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단호한 깨달음은 우리 자신을 얼마나 무력감에 빠져 잠들게 했던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혁명가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혁명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방법을 잘 모르고, 둘째로 겁이 난다. 세계와 싸우다가 잘못되면 소중한 나 자신에게 해가 오지는 않을지, 과연 장가는 갈 수 있을지 매우 걱정되며, 그런 걱정이나 두려움을 품고 조용히 한 권의 토익 문제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컴퓨터 학원에 들려 자격증 시험 날짜를 확인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면접날에는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여 서둘러 빗질을 하고 헛기침을 해서 가래를 좀 삭이고 들어가 질문 받기를 "당신은 한 마리 치킨으로 통통하게 사육되었습니까?" 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치킨으로 전락한 인간의 존재론적 절망감과 혹시 합격했을까 싶은 자본주의적 생물로서의 막연한 기대감. 그 누가 직업은 자아실현의 한 도구라고 하였던가.
그런 세계 속에서 스피드는 달린다. 한 31세기정도가 아닐까 싶은 세상이지만, 변한 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건 다름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사라져 망각되는 거대 자본의 성격 역시 변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피드와 함께 마하5 또는 마하6를 타고 결승점을, 빛을 향해 달린다. 마하는 음속이지. 음속으로 달리다 보면 언젠간 돈도 권력도 없는 우리 어린 시절의 그런 세계로 도달할지도 모른다. OMR 카드에 형 파이팅이라고 당당히 적어도 두렵지 않던 시절, 책상머리에 앉아 상상으로 자동차와 로봇을 운전하던 그 그립고 꿈결같던 나날. 언젠가 내게도 아이가 생겼을 때 나는 내 사랑스러울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 주고 싶다. 중요한건 돈과 권력이 아니라 불합리한 세계 의지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피드의 레이싱을 통해 거친 은유로, 그러나 자상한 은유로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물론 스피드 레이서의 결말은 세계의지의 화신, 즉 단 한 명의 자본가는 감옥으로 보냈으되 그러한 세계의지를 없애지는 못했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의지와 인간의 극복의지는 따지고 보면 태극, 낮과 밤, 앞면과 뒷면과 같다. 누군가는 작은 혁명으로 끝났을 뿐인 스피드의 레이싱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세계를 들어 없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가상을 통해서만 세계가 뒤바뀌는 것을 보는 것은 관객인 우리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문이 따로 없다. 영화는 딱 좋을 때 끝났다. 우리는 스피드의 우승을 보고 우리도 세계에 맞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다. 그리고 그 자신감으로 작게나마 자신의 생활속에서나마 그 세계의지에 저항하고 싶다. 싸우고 싶다! 맞서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인간이지 사육되는 치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피드 레이서의 스피드 레이서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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