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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루이 10권
사실 ↑이 포스트에서 내가 사용한 살이나 몸과 같은 단어의 의미적 출처를 찾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메를로 퐁티 수업 시간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으므로, 사실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메를로 퐁티의 몸-철학이란 대단히 애매하고 자의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내가 메를로 퐁티적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살-몸의 개념은 메를로 퐁티의 그것과는 상당부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갓 태어난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것은 순전히 몸에 의한다. 인간은 눈과 코, 입, 귀, 피부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그 내부에서 재구성하여 하나의 세계관념을 이루어낸다. 때문에 인간의 세계관념이란, 외부의 물자체적 세계를 다분히 인간의 몸의 존재방식에 토대하여 실천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늘을 나는 새나 물 속의 물고기와는 달리 몸의 구조상 지면을 붙어다니며 생활하기 때문에 공간의 인식에 있어 다분히 이차원적인 면모를 보이는데, 그러한 이차원적 면모가 건축의 형태로 형상화된 것이 바로 건물의 층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1층 2층 3층과 같은 식으로 이차원적 평면을 수직으로 쌓아 놓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낮이에 대해서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변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만약 새나 물고기가 건물을 짓게 되었다면 인간이 짓는 건물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새나 물고기는 인간과 같이 높낮이를 임의로 분절하지 않는 신체구조에서 기인한 생활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면과 45도 방향을 이루며 날아갈 수도 있고, 물 속에서 용수철을 그리는 것과 같이 회전하며 헤엄치기도 한다. 건축물이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구조화한 물질적 세계관의 가시화라기보다는 인간의 신체구조에서 기인된 세계관념의 현시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세계관념의 한계가 바로 건축의 한계이다. 가령, 우리는 그 내부에 바닥이 하나도 없는 거대한 보온병 같은 100층 짜리 건물을 짓지 않는다. 높이가 100층이나 되면서 바닥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이동방식 즉 신체구조에서 비롯된 생활방식에도 걸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이 불가능하다. 인간이 실제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그 건물의 바닥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구조를 이루고 있는 몸과 살이란 것에 대해, 정신과 육체에 대한 고전적인 입장을 따르게 될 때가 매우 재미있는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일종의 정신의 감옥으로서 기능하고, 우리의 정신은 육체의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를 간신히 알아내간다는 식의 담론인데, 그에 따라 생각해보자면 우리의 몸은 이미 하나의 세계 그 자체이다. 바닥-땅이라는 것이 발이라는 기관을 통해 실천적으로 해석된 세계 구조의 일부라면, 바닥-땅은 발의 연장(늘어남)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사물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을 해석하는 사용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즉, 우리의 몸은 준비된 세계 해석의 도구이자, 외부 세계를 자신의 몸과 합할 수 있는 끈적끈적하고 물렁한 덩어리이다.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욕설 혹은 위협이 대단히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한 개인이 재구성한 세계와 잠재된 세계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몸에 대한 파괴의지가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오심 가득한 극단적인 복수가 종종 복수 대상에 대한 몸의 훼손 혹은 절단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인간을 이루고 있는 세계를 함께 파괴하는 것이다. 조폭 두목의 오른팔. 이라는 표현을 쓸 때 그 오른팔은 반드시 그 조폭 두목이라는 사람의 뼈마디를 갖고 있는 피와 살덩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오른팔로 형상화되는 타인으로서 구성되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며 그의 몸은 그 '오른팔'이라는 존재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개인을 통해 확장된 세계 안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인간 사지의 절단이나 신체의 훼손이 종종 등장하는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을 접하면서 우리가 오싹함과 끔찍함을 느끼는 것은 한 개인의 세계가 순식간에 축소되는 과정을 '봄'에 대한 공포심이다. 가령 어느날 갑자기 이 지구가 우리집 만하게 축소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거대한 지구가 압축되어 관에 갇힌 것과 같은 몰골. 끔찍하지 않겠는가. 관이라는 상징으로 형상화되는 세계의 대폭적인 축소와 압축은 최종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폐소 공포증의 근본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히키코모리가 작은 방 안에서 거뜬히 몇 년을 버텨내는 것을 보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몸과 살의 연장으로서의 비가시적 세계관이 인터넷으로 연장되기 때문인 것인지도 모른다. 시구루이는 잔혹한 만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등장인물들의 팔이, 눈이, 발이, 가죽이 잘려나가는 무서운 만화다. 그러나 이 만화의 뛰어난 점은 그러한 '절단'의 형태로 표현되는 인간 세계관의 극악스런 축소가 인간의 몸을 통해 육화된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단순히 근육과 인체비례를 정확하고 실감나게 그린다는 말이 아니다. 만화 시구루이에 걸려 있는 문제는 세계 축소를 통해 다가오는 죽음의 언저리에서 버둥거리는, 불구가 된 인간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인 신체장애인과 관련된 담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만화 시구루이가 의도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바로 신체의 절단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인간'존재의 몸적 존재방식이자 하나의 실험이다. 이러한 면은 1권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한데, 장님 검객인 이라코 세이겐과 외팔이 검객인 후지키 겐노스케의 싸움은 단순히 불구된 두 몸이 맞부딪혀 누가 이길까 하는 의문이 아니라, 눈 없는 세계에서 눈 있는 세계의 후지키 겐노스케를 맞는 이라코 세이겐의 세계 해석과 팔 없는 세계에서 팔 있는 세계의 이라코 세이겐을 맞는 후지키 겐노스케의 세계 해석이 맞닥뜨리는 지점이다. 그들의 해석은 그들의 검술 - 코간류와 무명역류 - 로서 형상화되어 복수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세계를 찢어발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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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는건 당연한 자연..
by 환자 at 16:15 우울한 얘기를...20대가.. by 환상 at 15:09 그래도 제가 머리가 짧아.. by 환자 at 11:21 원래 해운대 사셨군요. .. by 환자 at 11:19 27세이니 아저씨 맞다. .. by 환자 at 11:18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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