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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22일
후지키 겐노스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시구루이. 어제 밤부터 시구루이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보면 볼수록 명작이다. 일본 고대 소설의 형식에서 빌려왔을 것으로 예상되는 스토리의 역순적 구성도, 섬뜩하면서도 담담한 하드보일드하게 펼쳐지는 누군가의 나레이션도, 장면장면 전율을 느끼게 하는 화면구성도 모두 마음에 든다. 특히 6권 이와모토 코간의 마지막이 일품이다. 그러나 역시 시구루이의 분위기를 가장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은 바로 등장인물들의 페르소나다. 광기어린 이와모토 코간과 정반대로 냉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후지키 겐노스케는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독자 앞에 시구루이의 세계를 열어주는 '무엇'이다. 이러한 광기어린 냉정함은 사람의 내장이 흩날리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가운데 담담하게 구석의 사각말칸을 채우는 나레이션을 통해 일차적으로 드러나며, 화면의 구성과 소품의 배치를 통해 이차적으로 드러나고, 최종적으로는 주인공들의 성격으로 회귀하여 드러난다. 이와모토 코간의 페르소나(고대 그리스 연극의 가면)는 광기어린 그 무엇이었으나, 독자들은 이와모토 코간의 광기어림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극단에 달한 냉정함을 느낀다. 또한, 독자들은 후지키 겐노스케의 극단적인 냉정함에 감탄하면서도, 그의 내면에 이글거리는 폭력의 잠재, 광기의 끓어오름을 감지한다. 이라코 세이겐이나 우시마타 곤자에몬의 페르소나는 독자적이라기보다는 이와모토 코간과 후지키 겐노스케의 존재감을 부각시킴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하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극적 장치-인물이다. 시구루이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다면적이고, 여러 겹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일견 단순하나 매우 복잡하다. 때문에 시구루이의 스토리 구성은 역순이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야기는 과거로 회귀하며, 사건의 근본을 파헤친다. 따라서 얼마 전에 죽은 인물이 다음 장에서 밥을 먹고 있으며, 지금 성인인 인물이 다음 장에서는 어린애가 되어 있고, 지금 불구인 자가 다음 장에서는 온전한 몸을 이루고 있다. 이 스토리 구성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의 구성요소, 혹은 트라우마들을 그들의 과거를 통해 차츰차츰 추척해가며 독자들은 그러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 잔혹하고 섬뜩하지만, 너무도 담담하게 들려오는 과거의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의 과거를 통해 최종적으로 후지키 겐노스케의 정체성에 도달한다. 비 내리고 번개 치는 들판에서 자신을 둘러싼 낭인들의 죽창을 두고 무표정하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들어 올리는 어린 시절의 후지키 겐노스케의 모습은, 그야말로 시구루이의 제목 그 자체, 분위기 그 자체를 아우르는 절묘한 대위법을 이룬다. (시구루이라는 제목은 죽음에 미쳤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만화 시구루이에 따로 주인공으로서 후지키 겐노스케를 소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후지키 겐노스케가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이 곧 이 만화의 본질과 맥을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뛰어난 작가의 시적 유희들은 나아가 그림과 표현, 연출에까지 연장되어, 마치 이와모토 코간의 광기어리면서도 냉정한 성격과 같은 정반대의 대비를 이룬다. 가령 코간의 비검인 나가레보시가 횡단하는 검임에 비해 이라코 세이겐의 무명역류가 종으로 내달리는 검이라는 사실이라던가, 이라코 세이겐이 꺾어 놓은 후지키 겐노스케의 두 손가락이 최종적으로는 자신에게 강력한 위해로 돌아온다던가 하는 인과응보적인 구성이라던가, 눈 먼 검객과 외팔이 검객이라는 이라코 세이겐과 후지키 겐노스케의 대결이라던가.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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