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화는 지난주말에 봤다.
나는 인디아나 존스를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두 명의 실존 인물이 있다. 바로 고고학자 A.H. 레이어드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다. 레이어드가 생각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디아나 존스는 많은 면에서 싸움 잘하고, 의리 있으며, 아랍인 친구가 많고, 인생 전부가 모험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가 사랑한 고고학자 어스틴 헨리 레이어드와 무척 닮았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라는 캐릭터는 상당부분 레이어드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멋대로 추측하고 있다. 나는 이 내맘대로 추측의 신빙성에 대해 어느 정도 근거를 댈 수도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내 멋대로 추측한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달리 인디아나 존스는 레이어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
그 근거는 C.W. 쎄람의 명저이자 고고학 서적의 고전인 [Götter, Gräber und Gelehrte] (영어판 제목은 [Gods, Graves, and scholars] 이며, 국내에는 대원사에 의해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의 출판이 일으킨 고고학 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949년 처음 출판되어, 1969년까지 26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독일에서만도 1957년까지 8~9년 동안 70만부 이상의 책이 팔렸다. 이 책은 빙켈만, 슐리만, 에반스, 샹폴리옹, 카터, 롤린슨, 레이어드, 조지 스미스, 톰슨 등등 유명한 고고학자들의 탐사과정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고고학적인 충실함을 놓치지 않는 명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학문이라는 오해를 풀어준 책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재수생 시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이후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되었으며,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설보다도 최고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인디아나 존스 캐릭터 창조에 사용된 여러가지 전제들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C.W. 쎄람의 이 책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좀 더 근본적인 수순을 찾아 내려간다면 빙켈만이나 슐리만과 같은 옛 인물들이 신화로만 알려졌던 옛 문명을 직접 발굴해낸 광경을 목격한 당시 사람들의 경악에서 찾아야 하겠으나, 언제부터인가 눅눅하고 어두침침한 도서관에서만 이루어지는 학문이라는 오해를 뒤집어 쓴 고고학을 다시 낭만과 모험이 뒤섞인 매력적인 무언가로 알리는 데에는 쎄람의 저작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원사에서 나온 쎄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나, 동 출판사에서 나온 아놀드 C. 브랙만의 [니네베 발굴기]의 일독을 권한다. [니네베 발굴기]는 기독교 구약성경에서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예언자인 요나가 방문하여 신의 분노를 전파한 도시, 니네베(니느웨라고도 한다)를 발굴한 모험왕 고고학자 레이어드의 전기이다.
레이어드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하고, 이번에는 철학자 하이데거 이야기로 넘어가보겠다. 하이데거는 근대 과학적 공간론을 비판하며 도구-사물을 통하여 열리는 새롭고도 획기적인 공간론을 이야기했었는데, 그의 존재론에 근거한 공간론에 의하면 사물은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본다면... '무인도에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떠올려 보자. 개인적으로 이 질문은 굉장히 하이데거적인 질문이라 생각한다. 이 질문의 답으로는 보통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컴퓨터와 같은 것들을 제시하곤 하는데, 하이데거의 입장에서 설명한다면 사람들이 그러한 사물들을 가져가겠다고 대답하는 이유는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의 실천적 해석에 힘입어 나름의 의미 연결망을 형성하여 기존에 살고 있던 세계와 흡사한 공간을 열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근대 과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space가 아니다. 거대한 빈 공간이 있고, 그 내부를 무언가가 채우고 있다는 사고는 사실 근대 과학의 어느 시점의 특수한 상황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사고방식이며, 실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란 전혀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라는 단어는 굉장히 여러 층위를 이루며 겹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렵지 않게 '스포츠의 세계', '남자의 세계', 낚시의 세계', '게임의 세계'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살펴본다면 세계의 존재방식이란 과학에서 주장하는 그것으로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는 도구들의 지시, 의미연결이 형성하는... 이를테면 하나의 web 과 같은 것 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서울시라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은, 다분히 서울시라는 공간, 혹은 좌표, 혹은 물리적 영역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함의로는, 그가 서울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사물들이 지시하는 연관관계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끔 판타지 세상으로 날아가는 불행한(행복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소설을 보곤 하는데 그런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판타지 세상으로 날아가서 어느 정도 상황을 인식하게 된 다음 생각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보통 다음과 같다. '이 곳은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곳의 도시는 정말 특이하군'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다른 공간에 떨어진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 연결망이 이루고 있는 세계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판타지 세상으로 갔다 할 지라도, 그곳에 그가 별다른 의심 없이 실천적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도구-사물들 즉 횡단보도와 신호등이라던가, 커피 자판기라던가 지하철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는 좀 더 덜 당황하게 되고 판타지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좀 더 빠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망치를 보면 못을 박는다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부피가 얼마고 재질이 무엇이며 굳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별 어려움 없이 의자는 '앉는 것' 이며 신발은 '신는 것'이라는 의미를 실천적으로 해석해낸다. 만약 이러한 실천적 해석이 기본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면 의자를 나무나 쇠의 결합이라는 사물 이전에 앉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적 해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의미 연결망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망치는 못을 박는 것이고... 망치의 의미는 못을 지시한다. 못은 망치와 연결되는 동시에 판자 혹은 벽을 지시하며, 판자나 벽은 이런 저런 의미 연결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집' 또는 건축물에 연결된다. 또한, 건축물은 대지와 비바람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에 연결이 된다. 하이데거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망치 하나에 세계가 담겨 있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생각은 사실 대단히 고고학의 연구방법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철검 하나를 발굴하여 이 철검이 발굴된 지층과 주변 지질이 어떠하므로 몇 백년전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며, 다른 금속과 합금된 사실을 토대로 당시 합금을 만들 정도로 높은 열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있었음을 알아내고, 세겨진 문양이나 그림 혹은 글자를 토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알아내기도 한다. 철검 하나에 세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검은 고고학자들 앞에 당시의 세계를 열어 주는 도구인 것이다. 고고학은 어쩌면 가장 하이데거적인 연구방법을 갖고 있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전공 때문인지... 나는 인디아나 존스 영화 시리즈의 나름 팬이다. 레이더스부터 라스트 크루세이드까지 DVD도 모두 갖고 있기도 하고, 어떤 대사는 좀 나도 모르는 사이 외우고 있기도 하고. 물론 자주 회자되는...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서구 우월주의는 좀 짜증나지만, 그러한 면을 신경쓰지 않으면 그저 재미있을 뿐인 오락 영화라는 주장에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설령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가 진짜 단순히 오락 영화를 찍었을 뿐이라고 주장해도 변하지 않을 나의 생각이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 이라던가 하는 것들로 대표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호 텍스트성을 상기하자. 독서는 저자가 의도한 의미에만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text와 저자라는 text가 만나 새로운 의미의 text가 탄생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단 하나의 옳은 해석은 없으며, 틀린 해석도 없다. (이런 점에서 스피드 레이서를 두고 '스피드 레이서는 그저 서양 오덕의 실사화일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게 되면 좀 답답하다) 나에게는 인디아나 존스 4에서 크리스탈 해골과 로스웰 UFO 추락 사건의 의미를 연결하여 인디아나 존스 세계관을 확장하는 것이 황당하다거나 이상했다기보다는 다분히 하이데거적 세계의 열려-펼쳐짐으로 보였으며, 강의실에서는 그저 늙은 교수님으로 보이는 인디아나 존스가 자신의 진정한 세계 - 의미연결망 - 인 모험의 장으로 뛰어들었을 때 젊은이인 샤이아 라보프가 '정말 교수님 맞아요?' 라고 말할 정도의 활약을 보이는 것에 대해 레이어드와 하이데거를 동시에 떠올라 너무 즐거웠다.
여담이지만, 인디아나 존스의 재치 - 도구 사용 능력은 시리즈 전통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디아나 존스의 정체성을 살려주는 것이 아닐까. 이동수단 또는 무기 등의 다양한 의미연결을 보여주는 채찍 외에도, 템플 오브 둠에서 나왔던 위에서 내려오는 천장을 해골로 고여 막는다던가, 라스트 크루세이드에서 나왔던 해골에 천을 감아 횃불로 사용한다던가 하는 것들. 물론 이번 4편에서도 그러한 인디아나 존스의 능력은 그가 아무리 늙어도 그의 정체성이 변화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냉장고를 간이 핵 방공호로 사용한다던가 하는 장면들. 그런 그의 능력은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인지, 샤이아 라보프도 그 못지 않은 재치를 보여주는데, 가령 크리스탈 해골로 적을 때려눕힌다던가 하는 장면은 정말 인디아나 존스의 씨(?)가 따로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