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루이 10권

증오심 가득한 복수는 언제나 상대방의 몸, 말하자면 살에 대한 파괴욕으로 나타난다. 사심 없이 검을 수련하리라 마음먹었던 후지키 겐노스케의 카타나가 이라코 세이겐의 눈 먼 육체를 겨눌 때 후지키 겐노스케 자신은 이미 하나의 육화된 검으로 변화해 있다. 공중으로 솟구치는 살점과 내장의 조각 틈새에서 대장간의 고열로 두겹으로 접어 두드린 두 자루의 일본도가 살을 가르고 지나간다. 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검 뿐. 이라코 세이겐, 이미 한 마리 호랑이 팔은 베었고 한 마리 호랑이는 외눈으로 만들었구나. 말랑한 진흙을 밟고 용은 승천할 수 없으니, 자신의 발등에 스스로 검을 꽂아 무무명역류를 완성하다. 한 가지 슬픈 것은 눈먼 용 앞에 호랑이의 제자들이 모두 쓰러졌다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 전율이 느껴지는 것은 이라코 세이겐과 후지키 겐노스케, 이와모토 코간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비극이 느껴지는 것은 이 만화의 원작 소설 '스루가 성 어전시합'의 후지키 겐노스케와 이라코 세이겐의 대결 챕터 제목이 '무명역류편'이라는 사실.

by 환자 | 2008/05/14 14:59 | 만화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alric.egloos.com/tb/34054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Let the pati.. at 2008/05/15 16:11

제목 : 세계의 파괴로서의 살의 절단과 시구루이, 그리고...
시구루이 10권사실 ↑이 포스트에서 내가 사용한 살이나 몸과 같은 단어의 의미적 출처를 찾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메를로 퐁티의 철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메를로 퐁티 수업 시간에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으므로, 사실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메를로 퐁티의 몸-철학이란 대단히 애매하고 자의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내가 메를로 퐁티적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살-몸의 개념은 메를로 퐁티의 그것과는 ......more

Commented by 환상 at 2008/05/14 23:23
어쩐지 엄청난 글인데....ㅡ_ㅡ;;;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14 23:54
환상 / 나는 별점 같은 걸 매기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굳이 별점을 매긴다면 내게 있어 시구루이는 유일한 10점 만점짜리 만화다. (대략적인 기준의 파악을 위해 다른 만화를 굳이 언급하자면... 기생수는 7점, 허영만/김세영의 타짜 7점 정도, 원피스가 3점, 간츠가 5점, 3x3 아이즈는 5점...이랄까. 난 굉장히 점수에 짠 편이다) 시구루이는 기생수처럼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고, 원피스처럼 감동하라고 두둥 두둥 거리지도 않는다. 장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만화는 그저 완벽한 각본에 의해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비극에 빠지고 한 명 한 명이 일본도에 의해 불구가 되어간다. 원작이 소설이라 그런지, 시구루이는 만화라기보다는 이미 영화나 연극의 감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만화다. 보기 드문 명작이니 꼭 보기를 바란다. 등장인물들이 실존인물이라는 것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물론 사건들은 만화가에 의해 많이 각색되었다)
Commented by 에슈 at 2008/05/15 10:10
심각하게 많이 각색되었지=▽=
내용 추가 거의 10배는 되는듯;
근데 엔딩이 참 크리티컬 히트였는데./..=▽=
난 이 작가가 14시합을 다 그릴지 첫번째 시합인 무명역류만 그릴지 그게 궁금해=▽=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15 16:12
에슈 / 근데 이 무명역류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 너무 뛰어난 만화야 너무... 이건 예술이야..
Commented by 코코 at 2008/05/15 19:42
아 이건 소설로 먼저 봐야겠는데?
Commented by 환자 at 2008/05/15 22:24
코코 / 번역판 없다.... 좀 더 긴 설명은 바로 위의 포스트의 덧글을 참고.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